미스코리아, 방송 스타 한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김소형 원장이 선친의 가업을 이은 2대 한의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소형 원장의 선친이 우리나라에 한의대를 세운 초대 교수들의 스승으로 유명했던 대한민국 1세대 한방 명의 여산(如山) 김종수 박사라는 것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어려서부터 김소형 원장은 환자로 북적이던 마당에서 침과 약초 그리고 부항을 장난감 삼아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부인병의 명의로 전국에 소문이 자자했던 여산(如山) 김종수 박사는 지방에서 온 환자들에게 자택을 내주어 진료기간 동안 기거하게 했습니다.
부인과의 특성상,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병을 키워오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여산(如山)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했던 환자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고 마음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병증으로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몸을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큰 돈을 들여 복사기를 구입한 여산(如山)은 그 당시 교류가 있던 유명 화가들에게 의뢰한 그림을 복사해서 처방전과 함께 환자에게 보냈습니다. 집에 기거하던 환자들을 위해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작은 음악회도 열고, 직접 시를 지어 환자들에게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환자의 병증 너머에, 지친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산(如山)의 비방 때문인지, 마음을 바라본 독특한 진료방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환자들이 며칠만에 크게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갔고, 그만큼 명의의 명성 또한 높아졌습니다.
후에 한의사가 된 딸에게, 여산(如山) 김종수 박사가 평생 비방과 함께 건넨 가장 큰 가르침은 ‘마음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의 병만 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환자를 환자로 대하지 않고 한 인격체로 대하라”는, 심의(心醫)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후 김소형 원장은 방송, 강연 등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진료실을 떠나지 않고 직접 환자를 만나왔습니다. 환자와 공감하고, 병 뒤에 숨은 아픈 마음까지 소통하는 심의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김소형 원장이 명의였던 선친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일생의 화두입니다.